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브 칼튼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mczhz0wupx1rge74zo1_500.gif|width=100%]]||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슬라이더가 그의 주무기였다. 각이 크고 예리한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타자를 농락했는데, 원래는 직구와 커브만 가진 평범한 투수였지만,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백도어 슬라이더로 우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친정팀 선배 [[밥 깁슨]]은 자기 슬라이더가 더 낫다면서 칼튼의 HoF 헌액식 때 "좌완 중에서는 최고지"라고 말했다. 물론 깁슨과 칼튼은 우완과 좌완에서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로 꼽히는데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팬들의 기억에는 이 두 사람보다 다음 세대인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가 더 선명하지만. 칼튼은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던 선배 밥 깁슨이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은 직구와 커브만 던지고 슬라이더는 안 던졌으므로 자신이 좋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방일해서 일본 선발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중 [[오 사다하루]]가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치자 그를 위협하려고 처음으로 몸쪽 슬라이더를 던져 봤다고 한다. 이때 오 사다하루가 어깨쪽으로 날아오는 그 공을 보고 몸을 뒤로 피하는데도 공 궤적이 휙 변해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걸 보고 칼튼은 '내가 멋진 슬라이더를 가졌구나'라고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전설적인 슬라이더의 봉인을 풀었다고. 타자들을 구위로서 찍어누르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많은 삼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동시에 완투형 투수로서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6년 연속 10완투 이상 기록한 선수였다. 그가 이런 스태미너와 구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투수로서는 거의 최초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덕분이었다. 아울러 쿵푸를 즐기면서 몸의 유연성을 길렀고, 철사장으로 왼손을 단련했다고 한다. 요컨대 당대에 이미 따를 자가 없는 훈련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조합으로 타자를 농락했지만,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왼손 투수로서 견제 실력이 빼어나서 타자들의 도루를 억제할 수 있었는데, 대신에 이 견제가 보크와 견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통산 보크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90개로 2위와 무려 2배가 넘는다.) 대신에 이 빼어난 견제 실력은 통산 견제사 부문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1위를 가져다 주었다. (통산 144개.) 또한 기록상으로 봐도 이닝이팅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풀타임 선발로 뛰기 시작한 1967년(22세)부터 노쇠화가 진행 중이던 1984년(39세)까지 17시즌 연속으로 세자릿수 이닝을 찍었고, 이중 200이닝+를 찍지 못한 시즌은 2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풀타임 첫해인 1967년(193이닝)과 1981년(190이닝). 1981년은 파업으로 인한 시즌 단축으로 200이닝을 달성하기엔 어려운 여건이었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7년 연속 200이닝+를 찍었고 그중 300이닝+ 시즌이 2시즌(1972, 1980)이나 된다. 또한 이중 MLB 최다이닝 소화 시즌이 5시즌(1972~73, 1980, 1982~83)이다. 게다가 스티브 칼튼의 1980년 시즌이 MLB 최후의 단일 시즌 300이닝 투수이다.[* 분업화가 심해진 현재로써는 단일 시즌 300이닝은 절대 불가능하고 나와서도 안 되며 200이닝 소화조차도 힘들어진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